핵심 요약: 엔저로 일본이 싸다던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환율·면세 혜택을 따져 서울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명품을 집중 구매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엔저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관광객이 명품 쇼핑 목적지로 일본보다 한국을 택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서울 주요 백화점과 시내 면세점에서는 중국 단체 관광객이 루이비통·샤넬·에르메스 등 명품 매장을 돌며 한 번에 수백만 원씩 결제하는 장면이 연일 포착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최근 방한 중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일본 말고 한국에서 명품을 사자"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엔저로 일본 쇼핑이 유리하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실제 가격과 환율, 면세 혜택을 따져보면 한국이 더 경쟁력이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다.
서울 명동·잠실·강남 일대 대형 백화점에서는 미리 쇼핑 리스트를 들고 온 중국 단체 관광객이 오전 개점 직후부터 명품 코너를 집중 공략하는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매장에서는 특정 가방과 지갑, 시계 등 인기 품목 재고가 한 번에 동나면서, 매장을 찾은 내국인 고객들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는 같은 브랜드·같은 제품이라도 가격이 더 비싼 경우가 적지 않다. 관세와 유통 마진, 위안화 약세 등이 겹치면서, 중국 내 백화점 판매가가 한국 판매가보다 수십만~100만 원 이상 높게 형성된 상품이 있다는 것이 유통업계의 설명이다. 여기에 한국에서 제공하는 외국인 부가세 환급, 면세점 할인, 카드사 프로모션까지 합치면, 실질 체감 가격 차이는 더 벌어진다.
중국인 관광객의 소비 패턴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단체 관광 코스에서 화장품·기념품 등 소액 쇼핑 비중이 높았다면, 최근에는 명품·패션·시계·주얼리 등 고가 상품을 목표로 한 '집중 쇼핑' 수요가 두드러진다. 한국을 찾는 20~40대 중국인 중 상당수가 한국 방문의 주요 이유로 쇼핑, 특히 명품 구매를 꼽는다는 조사 결과도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왜 중요한가
중국인 관광객의 명품 쇼핑 행선지 변화는 한국 유통·관광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인바운드 수요가 끊기며 큰 타격을 받았던 백화점·면세점 업계는, 중국 단체 관광 재개와 함께 다시 매출 반등을 기대해 왔다. 여기에 "일본 대신 한국"이라는 선택이 더해지면, 중국발 소비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관광업계에서는 향후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내 쇼핑 규모가 다시 수십조 원대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재차 제기된다. 과거에도 중국인 관광객은 한국에서 화장품과 함께 해외 명품을 가장 많이 구매하는 고객군으로 꼽혔다. 이들의 재방문과 동행 인원 확대가 이어지면, 쇼핑 지출뿐 아니라 숙박·식음료·교통 등 연관 산업 전체로 파급 효과가 확대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환율과 국가별 가격 정책이 관광 수요를 좌우하는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엔저가 심화되면서 일본을 향하던 쇼핑 수요가 당연히 일본으로 쏠릴 것이라는 기존의 통념과 달리, 중국 소비자들은 실제 결제 금액, 사후 환급, 품목 구성까지 세밀하게 비교하며 여행지를 고르고 있다. 이는 앞으로도 글로벌 명품 기업과 각국 유통사가 가격 전략을 짤 때, 관광객을 겨냥한 '국가 간 가격 차'를 더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쟁점
1. 과열 논란과 내국인 역차별 이슈
중국인 관광객이 특정 브랜드 제품을 대량 구매하면서,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재고가 외국인에게 먼저 돌아간다"는 불만도 나온다. 인기 제품 대기 리스트가 길어지거나, 돌려받는 혜택이 내국인보다 외국인에게 유리하게 설계돼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 '역차별' 논란으로 번질 소지가 있다. 유통업계는 매장별 물량 배분과 프로모션 조건을 조정하며 균형을 맞추려 하고 있지만, 성수기마다 비슷한 논쟁이 반복되고 있다.
2. 중국 경기 둔화와 소비 지속 가능성
중국의 부동산 경기 둔화와 청년 실업, 위안화 약세 등 거시경제 불안 요인이 커지는 가운데, 고가 명품을 대량 구매하는 소비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존재한다. 중국 정부의 반부패·사치 규제 기조가 다시 강화될 경우, 해외 명품 쇼핑에 대한 단속이나 사회적 시선이 강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유통업계 입장에서는 중국 수요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 셈이다.
3. 일본·홍콩·동남아와의 경쟁 심화
한국이 당장은 가격 경쟁력과 쇼핑 편의성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지만, 일본·홍콩·싱가포르 등도 중국 관광객을 붙잡기 위해 공격적인 면세 혜택과 프로모션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일본은 엔저 지속 시 자체 할인, 중국인 대상으로 한 모바일 결제 프로모션 등을 통해 가격 격차를 줄이려 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어느 국가가 중국인 관광객에게 '최적의 쇼핑지'라는 이미지를 선점하느냐에 따라 동북아 관광·유통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
다음에 볼 것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 단체 관광 노선과 서울 내 쇼핑 코스의 변화다. 여행사들이 아예 '명품 집중 쇼핑'을 전면에 내세운 상품을 늘려가는지, 혹은 문화·관광 콘텐츠와 쇼핑을 균형 있게 배치하는지에 따라 도심 상권 구조도 달라질 수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중국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 VIP 프로그램과 전용 라운지, 통역·결제 지원 확대 등 서비스 투자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내국인 고객의 불편과 피로감이 커지지 않도록, 인기 상품 예약제·온라인 판매 물량 확대 등 보완책을 병행할지가 관건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외국인 대상 면세·환급 제도를 유지·개선하는 동시에, 특정 국적 관광객에 매출이 쏠릴 때 발생하는 리스크를 관리할 정책이 필요하다. 관광 수요가 한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도록, 동남아·미국·유럽 등 다른 지역 관광객 유치 전략을 병행하는 것도 중장기 과제다.
결국 "일본 말고 한국에서 명품을 사자"는 중국인 관광객의 선택이 일시적 현상에 그칠지,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쇼핑 트렌드로 자리 잡을지는 앞으로 몇 시즌의 여행 수요와 각국의 가격·환율·정책 변화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